[동아게임백과사전] 마냥 행복하지는 않은 게임 속 연인들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또 언제든 참 행복할 수 있으리라고 보는데요. 아쉽게도 게임에 등장하는 연인들에게 그런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서로 적대하며 싸우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작별을 고하기도 하죠. 아무래도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동화 풍의 해피엔딩 보다 비극으로 마무리되는 이야기가 게이머들의 더 뇌리에 오래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표적인 커플은 스타크래프트에 등장하는 사라 케리건과 짐 레이너입니다. 동료로 시작한 이 둘은 서로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 깊어지며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됩니다. 뭐 다른 연인들이 그러는 것처럼 초기에는 갈등이 있었지만, 점차 서로를 존중하게 되고 비밀 임무를 수행하며 더 가까워지게 됐죠.
하지만 이 둘의 사랑은 아크튜러스 멩스크의 배신으로 비극으로 치닫고 맙니다. 멩스크는 케리건을 저그 진영에 두고 옵니다. 레이너는 케리건을 죽게 만든 것과 다름없는 멩스크의 배신에 크게 분노했고, 복수를 다짐하며 혁명군을 떠납니다.
하지만 버려진 케리건은 저그 초월체의 선택을 받아 칼날 여왕으로 탄생하고 말았고, 레이너는 그녀를 구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레이너는 강력한 유물의 힘을 활용해 케리건을 저그 돌연변이와 어두운 목소리로부터 해방합니다. 연인이었던 케리건을 돌려놓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자신의 분노를 모두 억눌러 가능했던 일이었죠.
돌아온 케리건은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레이너가 멩스크에 의해 체포되고 사형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맙니다. 분노한 케리건은 다시 저그의 힘을 받아들이고 멩스크를 위협합니다. 이 과정에서 레이너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레이너는 다시 저그를 선택한 케리건에 대해 분노했지만, 결국 그녀를 돕기로 합니다.
둘은 최종적으로 멩스크를 무찌르며 복수에 성공하죠. 둘의 이야기는 '스타크래프트2 공허의 유산'에서 마무리됩니다. 케리건은 게임의 최종 보스로 등장하는 젤나가 '아몬'을 물리치기 위해 자신마저 젤나가가 되고 맙니다.
아몬과의 최종 결전을 앞둔 캐리건은 “가 짐 어서”라서는 말을 남기고 빛에 휩싸이며 아몬에게 최후의 일격을 먹입니다. 번외로 '가 짐 어서'는 좋든 나쁘든 여러 의미로 스타크래프트 팬에게 충격을 선사했죠.
우주의 운명까지 이어진 케리건과 레이너의 끝은 에필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요. 최종 결전 이후 시간이 흘러 레이너의 앞에 등장한 '유령' 요원이 케리건일까요? 아니면 케리건을 잊지 못하는 레이너의 망상일까요?
국내 RPG 시리즈로 유명한 '창세기전' 시리즈에서도 행복하지 못한 연인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먼저 '창세기전2'에는 팬드래건의 왕녀인 이올린이 등장합니다. 조국을 빼앗은 흑태자와 게이시르 제국을 향한 복수심에 불타고 있는 인물인데요. 왕국의 재건을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죠.
이올린과 기사단은 왕국의 몰락 이후 제국군의 추격을 받으며 비프로스트 공국으로 도주하고, 여기서 기억을 잃어버린 인물 G.S를 만나게 됩니다. G.S의 안내를 통해 기간테스 산맥 같은 위험한 길을 나선 이올린은 동생 라시드를 찾기 위한 빙룡성 모험 등 다양한 일을 겪으며 G.S와 점점 가까워지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스스로 여자이기를 포기한 몸이라 밝히며 G.S와의 사랑을 거부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죠.
사실 사고로 기억을 잃은 G.S의 진짜 정체는 이올린이 원수로 생각하던 게이시르 제국의 흑태자였습니다. 기억을 잃었던 흑태자는 G.S로 활약했던 시절의 기억까지 찾아 1인 2역처럼 양쪽 진영을 오가면서 전쟁을 종식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던 중 안타리아 대륙의 소멸을 계획하고 있던 신들의 음모를 알게 되고 서로 대립하던 다크아머와 실버애로우 진영은 힘을 모으게 됩니다.
결국 신까지 물리치며 전쟁을 승리로 이끈 흑태자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존재이자 세상을 구한 영웅이 됐죠. 하지만 흑태자에 대한 원한이 깊었던 이올린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복수를 마무리하기 위해 그가 있는 폭풍도 정상으로 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G.S와 흑태자가 동일 인물이었다는 진실을 알게 돼 큰 충격에 빠집니다. 오랜 연인이 원수였던 것이죠.
너무나 강력해진 흑태자는 자신의 힘을 제어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는 괴물이 될 수 있음을 알았고, 이올린에게 자산의 목숨을 끊어 달라 부탁합니다. 이올린은 결국 자신의 손으로 흑태자를 찔러 안식을 줍니다. 둘의 기구한 운명은 이렇게 끝이 나죠.
시리즈의 다음 편인 '창세기전3'의 살라딘과 셰라자드가 보여주는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시반 슈미터라는 용병단의 대장인 살라딘은 셰라자드를 감옥으로부터 구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그녀를 구출합니다. 그녀의 오빠는 투르의 정치적 지도자인 칼리프였고, 살라딘은 셰라자드를 돕는 역할을 하며 여러 위기에서 그녀를 구해냅니다.
특히, 귀중한 약초인 가베라를 찾는 동안 발생한 사건으로 두 사람의 유대감이 강해집니다. 이후 살라딘의 도움으로 술탄 세력과의 전쟁에서 우위를 점한 칼리프 세력은 셰라자드의 오빠를 새로운 술탄으로 세우려고 하지만, 철가면이라는 인물에 의해 셰라자드의 오빠가 죽고 맙니다. 살라딘은 셰라자드에게 술탄이 되어줄 것을 요청하고, 이 과정에서 둘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죠.
그 시점에 버몬트 대공이 이끄는 팬드래건의 왕국군이 투르로 원정을 왔고, 살라딘은 어쩌면 이번 전쟁을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자신의 비밀을 밝히죠. 사실 살라딘은 팬드래건 왕국 사람이었습니다. 어릴 적 동생을 잃어버려 그를 찾고 있었던 것이죠. 투르 사람이 아니었던 살라딘의 비밀을 알게 된 셰라자드는 너무나 쉽게 그를 용서하고, 둘의 사랑은 더 깊어지죠.
살라딘은 자신이 팬드래건의 왕족임을 밝히며 투르와 팬드래건 사이에서 발생한 사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버몬트가 배신했고 셰라자드를 납치하고 강간하며 신부로 맞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살라딘이 버몬트를 찾아갔지만, 셰라자드를 위협하며 협박하는 버몬트의 모습에 무기를 내려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순간 셰라자드는 스스로 버몬트의 검에 몸을 던지며, 살라딘에게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의 빛이 되어 달라며 삶을 마칩니다.
앞선 대결에서 버몬트가 자신이 찾아 헤매던 동생인 것을 알아챈 살라딘은 전투에서 승리하고 자신이 필립 팬드래건임을 밝히며 동생인 버몬트에게 "좋은 왕이 되어야 한다."라고 이야기하며 떠나죠. 연인을 잃었지만, 평생 찾아다니던 동생에게 끝까지 칼을 겨눌 수는 없었습니다.
여기에 '창세기전3'는 파트2까지 이어지며 더 큰 스케일의 이야기로 전개되고, 크리스티앙과 죠안이라는 비운의 연인 이야기도 나오죠. 당시 창세기전 개발진은 연인 사이를 좋게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나 봅니다.
이 외에도 더 많은 비운의 연인들이 게임에 등장합니다. '기어즈 오브 워' 시리즈에 나온 도미닉 산티아고와 마리아의 이야기도 눈길을 끕니다. 도미닉은 이머전시 데이 사건으로 자녀를 잃고 마리아가 실종된 후 오랜 시간 동안 그녀를 찾아 헤맵니다. 결국 마리아를 찾았지만, 그녀는 이미 로커스트에 의해 온몸이 심각하게 망가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의 아내는 정신마저 붕괴해 있어 이미 죽은 것과 다름이 없었죠. 도미닉은 엄청난 충격을 받고 오열했습니다. 결국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자기 손으로 죽이고 맙니다. 세상에 남은 로커스트를 모두 쓸어버리라 다짐하면서 말이죠. A.I가 멍청해 뇌 없이 행동한다며 도미닉을 뇌미닉이라 부르며 놀렸던 이용자들도 그 순간만큼은 그러지 못했을 것입니다.
'레드 데드 리뎀션' 시리즈에 등장하는 존 마스턴과 아비게일 마스턴도 좋은 사례입니다. 둘은 고아 출신으로 힘들게 자랐습니다. 존은 도둑질을 하다 교수형에 처할 위기 상황에서 더치에게 구해져 갱단에 합류했고, 아비게일은 창였습니다. 아비게일은 갱단 대부분 인원과 관계를 가졌지만, 존을 사랑하게 됐습니다. 사이에는 잭이라는 아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존은 처음에 아버지가 되는 것을 두려워했고, 존의 폭력적인 성향으로 한때 아비게일이 떠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존은 가족의 중요함을 깨닫게 되고 부부는 사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존은 도망자 신세가 되고, 가족까지 도망자 신세로 살게 하지 않으려면 그의 죽음밖에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존은 그렇게 가족을 위해 존은 목숨을 바칩니다. 그리고 얼마지 지나지 않아 아비게일 부인도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여운을 깊게 남기죠.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에도 연인의 이야기 많지만, '파이널 판타지 10'의 유우나와 티다의 이야기는 JRPG를 대표하는 사랑 이야기죠. 어마어마한 시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불가능하리라 생각됐던 신(sin)을 물치리는 모습을 보여준 유우나와 티다의 모습은 많은 게이머에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티다는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었죠. 당시 인터내셔널판 주제가로 탑재된 가수 이수영이 부른 '얼마나 좋을까'라는 노래는 '파이널 판타지 10'과 참 잘 어울렸죠.
'파이널 판타지 10'에서는 결국 티다가 사라지면서 유우나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이 아닌 해피엔딩이 되고 말았는데요. 티다를 찾아 나서는 유우나의 이야기는 '파이널 판타지 10-2'로 이어졌습니다. 게임을 정말 꼼꼼하게 플레이했다면 유우나에게 큰 선물을 전할 수 있었죠.
오늘은 게임 속에 등장하는 비운의 커플을 살펴봤는데요. 여러분은 기억에 남는 게임 속 연인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