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대여점처럼, 게임 매장도 역사가 될까?
게임 매장의 위세가 예전 같지 않다. 한때 신작 패키지를 사기 위해 이용자들이 줄을 서던 오프라인 게임 매장은 이제 디지털 다운로드와 온라인 쇼핑의 확산 속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고, 주요 글로벌 게임 유통업체들도 매장 폐쇄와 사업 재편에 나서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도 실물 게임 유통 시장이 이미 쇠락기에 접어들었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이 흐름은 어딘가 익숙하다. 과거 비디오 대여점이 기술 변화와 소비 방식의 변화 속에서 빠르게 사라졌던 역사를 다시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반복되는 역사? 비디오 대여점의 호황과 쇠락
1970년대 VHS 비디오테이프가 보급되면서 비디오 대여점이라는 산업이 탄생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한국에서는 동네마다 비디오 대여점이 하나씩 있었다. 스마트폰도, OTT도 없던 시절이었던 만큼 당시 인기 작품을 빨리 보려면 부지런히 매장을 들락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국내 비디오 대여점 시장은 실제로도 상당한 규모였다. 문화관광부 집계 기준 1997년 국내 비디오 대여점은 3만3,600곳, 비디오·음반 복합매장은 3,500여 곳에 달했다. 당시 비디오 생산량은 약 6,300만 개, 출고가 기준 매출은 1,200억 원 규모로 집계됐다.

해외에서는 블록버스터가 그 상징이었다. 1985년 미국 텍사스 달라스에서 창업한 블록버스터는 고객 데이터를 소프트웨어로 관리하고, 대형 진열대 방식으로 수많은 타이틀을 한눈에 고를 수 있게 하는 등 당시 기준으로는 혁신적인 비디오 대여 체인이었다. 전성기인 2004년에는 전 세계 9,094개 매장을 운영했고, 직원 수만 8만 명을 넘겼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분위기가 급격히 바뀌기 시작했다. DVD 가격 하락, 케이블 TV와 IPTV 확산, 초고속 인터넷 보급, 온라인 VOD 서비스가 차례로 등장하면서 매장에 직접 방문해 테이프나 DVD를 빌리는 방식은 점점 불편한 소비 방식이 됐다. 국내에서도 변화는 빨랐다. 2006년 보도에 따르면 서울의 비디오 대여점은 2002년 3,000곳 이상에서 2006년 전화번호부 기준 400곳 남짓으로 줄었다. 전국 비디오 대여점도 4,000여 곳 수준까지 감소한 것으로 언급됐다.
블록버스터도 연체료 폐지와 온라인 서비스 도입 등으로 반격을 시도했지만, 이미 시장의 흐름은 돌아서 있었다. 결국 블록버스터는 2010년 파산보호를 신청했고, 현재는 미국 오리건주 벤드에 남은 마지막 매장만이 ‘마지막 블록버스터’라는 상징적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쇠락의 흐름에서 살길을 찾은 넷플릭스

비디오 대여점이 사라졌다고 모두가 몰락한 것은 아니다. 같은 대여 산업에서 출발했지만, 시대의 변화를 올라타며 완전히 다른 기업으로 성장한 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넷플릭스다.
넷플릭스는 1997년 설립됐고, 이듬해인 1998년 온라인 DVD 대여 서비스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용자가 매장을 방문하는 대신 인터넷으로 보고 싶은 DVD를 고르면 우편으로 받아보는 방식이었다. 이후 1999년에는 월정액 구독 모델을 도입했고, 2007년에는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회사의 방향이 결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넷플릭스의 중심축이 DVD 우편 대여에서 인터넷으로 영상을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 전환은 당시 기준으로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인터넷으로 영상을 본다는 경험은 지금처럼 자연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콘텐츠를 본다”는 방향성을 잡았고, 결과적으로 스트리밍 시대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여기서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사라진 것이 ‘영상 콘텐츠’ 자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라진 것은 비디오테이프와 DVD를 빌리기 위해 ‘매장을 방문하던 방식’이었고, 넷플릭스는 이 변화의 방향을 비교적 빠르게 짚어낸 셈이다.
비디오 대여점과 유사한 흐름을 보이는 게임 매장
지금 게임 매장은 2000년대 초 비디오 대여점이 처했던 상황과 닮아 있다. 과거에는 게임을 사려면 오프라인 매장을 찾는 것이 당연했다. 용산전자상가, 국제전자센터, 동네 게임숍, 대형마트 게임 코너는 신작 패키지를 구입하고, 예약 특전을 받고, 중고 게임을 사고파는 중심지였다. 인기 신작이나 한정판 출시일에는 매장 앞에 줄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게임 유통의 중심은 빠르게 디지털로 이동했다. PC 게임은 스팀을 중심으로 디지털 다운로드가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 잡았고, 콘솔 역시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 엑스박스 스토어, 닌텐도 e숍을 통해 게임을 바로 구매하고 내려받는 방식이 보편화됐다.
실제로 소니가 공개한 2025 회계연도 4분기 자료에 따르면 PS4와 PS5 풀게임 소프트웨어 판매 중 디지털 다운로드 비율은 85%에 달했다. 2025 회계연도 전체 평균도 78% 수준으로 알려졌다. 이제 콘솔 이용자들 사이에서도 디스크를 사서 게임을 즐기는 방식보다 디지털 스토어에서 바로 구매하고 내려받는 방식이 훨씬 대중적인 소비 방식이 된 셈이다.

대표적인 게임 매장인 게임스톱이 이 흐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게임스톱의 2026년 10-K 자료에 따르면 2025년 2월 1일 기준 회사가 임차해 운영하던 매장은 3,203곳이었다. 이후 게임스톱은 대규모 매장 정리에 나섰고, 미국에서만 590개 매장을 닫아 2026년 2월 기준 미국 내 매장 수가 2,325곳으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유럽에서 330개 이상, 캐나다와 호주에서 약 50개 매장이 추가로 정리됐고, 회사는 향후에도 ‘상당한 수’의 추가 폐점을 예고했다.
여기에 결정적 쐐기를 박을 수 있는 변화도 예고됐다. 더타임스 등 해외 매체에 따르면 소니는 2028년 1월부터 신규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의 실물 디스크 생산과 유통을 중단하고, 신작을 디지털 형식으로 제공하는 방향을 추진한다. 오프라인 게임 매장은 신작 패키지 판매와 예약 특전, 한정판 판매, 중고 거래 등 핵심 방문 수요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그럼 게임 매장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이런 환경에서 게임 매장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이상 ‘게임 디스크를 파는 곳’에 머물러서는 어렵다. 비디오 대여점이 단순 대여업에 머물렀을 때 쇠락을 피하지 못했던 것처럼, 게임 매장도 디지털 플랫폼이 더 싸고 빠르고 편한 영역에서 정면승부를 걸기는 쉽지 않다.
이에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체험과 커뮤니티 공간으로의 전환’이 가장 현실적인 생존 전략이라고 봤다. 디지털 다운로드가 대체하기 어려운 것은 ‘경험’이다. 고가의 콘솔과 주변기기, 게이밍 모니터, 레이싱 휠, 아케이드 스틱, VR 기기 등은 온라인 상세 페이지보다 직접 만져보고 써보는 경험이 중요하다. 오프라인 매장이 단순 판매대가 아니라 체험존, 시연 공간, 로컬 이스포츠 대회장, 하드코어 이용자를 위한 커뮤니티 허브로 기능한다면 디지털 플랫폼과 다른 가치를 만들 수 있다.

이어 관계자는 레트로 게임과 수집품 시장으로서의 의미도 더 커질 수 있다고 봤다. 음악 시장에서 스트리밍이 지배적인 방식이 됐지만 바이닐 레코드(LP)가 프리미엄 수집품으로 부활한 것처럼, 실물 게임도 대중 유통품이 아닌 컬렉터 상품으로 남을 가능성이 있다. 생산이 중단된 옛 게임 소프트웨어와 콘솔, 한정판 패키지, 개발자 사인 제품, 초판본, 미개봉 제품은 디지털 다운로드로 대체할 수 없다. 소니의 디스크 중단 이후 오히려 일부 실물 게임의 수집 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도 가능한 대목이다.
굿즈와 IP 상품에 집중하는 것도 또 다른 방향이다. 이미 일부 해외 게임 매장은 패키지 게임 판매 비중이 줄어드는 대신 피규어, 의류, 트레이딩 카드, 보드게임, 레트로 하드웨어, 컬렉터 상품으로 매출 구조를 바꾸고 있다.

마지막으로 관계자는 디지털과 오프라인을 연결하는 ‘창구’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봤다. 디지털 구매를 안내하고, 기기 세팅을 돕고, 주변기기와 굿즈를 함께 판매하는 공간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노년층 세대나 라이트 이용자에게는 여전히 오프라인 상담과 설명이 수요가 있을 수 있다.
한 패키지 게임 수집가는 “게임 매장의 미래는 ‘무엇을 파느냐’보다 ‘왜 방문해야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단순 판매점이 아니라 이용자가 일부러 찾아올 이유가 있는 공간으로 방향성을 확실히 잡아야 다음 시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