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사랑한 그대에게 바친다
게임이 영화로, 영화가 게임으로 만들어지는 이른 바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 전략은 실용적인 측면에서 상당히 유용한 전략이다. 어느 정도 흥행 요소가 검증된 소재를 서로 공유함으로써 상호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는데다가 흥행적인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위험부담을 다소나마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을 영화로, 영화를 게임으로 만나는 일이 당연시될 정도로 최근 들어 잦아진 것도 다 이러한 이점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은 사실 그 달콤한 이론과는 달리 지금까지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씁쓸한 결과로 이어졌던 경우가 오히려 많았다. 게임으로 만들어진 '매트릭스'가 그랬고, 영화로 만들어진 '파이널 판타지'도 그랬다. 특히 영화 '파이널 판타지'의 경우에는 매번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엄청난 흥행 성적을 거두었던 게임과는 달리 제작비의 1/3에 불과한 초라한 흥행 성적을 거두었으며, 이로 인해 게임의 개발사이자 영화의 제작사인 스퀘어는 회사의 기둥이 뿌리째 흔들릴 정도의 막대한 손해를 입었었다. 이외에도 언급하기가 버거울 정도로 수많은 게임과 영화들이 기대만큼의 결과를 이루어내지 못 한 채 사라져 갔으며, 걔 중에는 영화로 만들어진 '파이널 판타지'처럼 차라리 안 만드는 것만 못했다는 악평 속에서 어둠의 저편으로 도망치듯 사라져 간 것들도 상당했다. 그렇다면 왜, 도대체 왜 이론만큼 실제로는 효과를 내지 못 했던 것일까? 그 이유에는 견해의 차이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누가 뭐라 해도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른 게임과 영화 두 매체 간의 특성 차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가 아닌 게임으로 만나는 해리포터는 과연?
해리포터와의 불의 잔(이하 불의 잔)은 일단은 그러한 면에서 어느 정도 안전한 구역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개발사인
EA가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이익이 나지 않는 시리즈를 이렇게까지 계속 이어 오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영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해리포터 게임 시리즈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개발사 입장에서 기대만큼이든 아니든 이 시리즈를 통해서 어느 정도의 짭짤한 재미는 봤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는 바꿔 말하면 게이머들에게서도 그만큼의 호응이 있어 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영화의 개봉에 발맞춰
다시금 찾아온 해리포터 게임 시리즈의 최신작인 불의 잔 역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최소한 기대에 못 미치는 씁쓸한 결과를 보여주진 않을 것이란
확신을 품게 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의 잔은 그러한 확신을 최소한 실망시키지는 않는다. 자신이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것을 직접 해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충족시켜주며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이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 세계를 바탕으로
충실하게 구현되어 있는 불의 잔의 게임 속 세계는 플레이어에게 영화와는 또 다른 느낌의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있으며, 영화에서 등장했던
신비롭고 다채로운 마법 또한 그 모습 그대로 게임 속 세계에 구현되어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자신이 직접 해리포터와 헤르미온느, 그리고 론이
되어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마법을 사용해보며 색다른 재미를 느껴볼 수 있다. 특히, 세 명이 함께 힘을 합쳐 사용하는 협력 마법의
존재는 영화의 내용을 충실하게 구현해냈다는 측면에서는 물론 게임의 재미를 한층 끌어올려주고 있다는 측면에서도 상당히 높이 평가할만한 요소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상상 속 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괴물들과 전투를 벌이며 다양한 퍼즐을 풀어나가는 방식의 액션 어드벤처적인 게임 진행 방식도 영화의 내용을 아주
잘 살려내고 있기 때문에 딱히 흠잡을만한 곳이 없다. 지금까지 영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던 대부분의 게임들이 그저 영화의 일부분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는 치명적인 실수를 한 것에 반해 불의 잔은 영화의 내용을 게임의 특성에 맞게끔 적절하게 손봄으로써 플레이어에게 '직접 한다'는
느낌을 충실하게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해주는 것에 지나지 않았던 영화의 재미를 게임을 통해서 직접 체험하는
재미로 재창조해내는데 나름대로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해리포터 게임 시리즈가 여기까지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점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와는 또 다른 볼거리
|

실감나는 배경 묘사
---|---

신비로운 마법의 힘!!
|

셋이서 함께!! 협력 마법!!
---|---
하지만 불의 잔 역시 영화 그 이상의 게임으로 평가하긴 힘들어 보인다. 카드 획득과 장착을 통한 캐릭터 강화 시스템이나 곳곳에 숨겨져 있는
재미난 요소 등에서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개발진이 기울였을 노력이 엿보이긴 하지만 세세한 부분까지 파고 들어가면
게임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부실 요소가 의외로 너무나도 많은 곳에서 눈에 띄기 때문이다.
먼저 시점에 관한 문제부터 이야기해보자. 불의 잔은 기본적으로 자동 시점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이는 소설과 영화가 성인보다는 아동들에게서
호응이 더 높았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게임 또한 조작에 능숙하지 않은 아동들이 더욱 많이 즐길 것을 배려한 조치라고 생각된다. 시점 조작을
자동으로 해주면 그만큼 플레이어 입장에선 조작이 한결 간편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의 잔에선 이러한 자동 시점 조작이 플레이어를 편하게
해주는 것보다는 오히려 곤혹스럽게 하는 부분이 많다. 바로 앞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답답한 시점을 보여줄 때도 있으며,
시점을 조작할 수 있는 키가 아예 존재하지 않다 보니 다른 게임에선 제자리에 선 채로 시점 조작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도 불의 잔에선
일일이 플레이어가 직접 이동해 다니면서 확인을 하는 수밖에는 없다. 이 얼마나 번거로운가. 자동 시점 방식을 채택하되 시스템적인 한계를
고려해서 시점을 조작할 수 있는 키 하나 정도는 넣어주는 센스가 필요했다.
해리포터와 헤르미온느, 그리고 론 이렇게 세 명의 캐릭터를 함께 등장시킨 부분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야겠다. 항상 셋이서 붙어 다니면서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영화의 내용을 감안하면 이러한 설정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상당히 유효 적절했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문제는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캐릭터 외에 나머지 두 명의 캐릭터의 인공지능이 플레이어의 의도만큼 제대로 따라와주질 못한다는 점에 있다. 특히 협력
마법을 사용할 때 이러한 점이 두드러진다. 빨리 좀 와서 같이 마법을 사용해주었으면 좋겠는데 뒤에서 우물쭈물하고 있질 않나,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 마법을 사용해 벽돌을 들어올리려고 하는데 그 벽돌 위에 올라가 있질 않나 답답한 경우가 정말 한 두 번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어이가 없었던 경우는 시간적인 간격을 두고 주기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를 피해 지나가는 길에서 무작정 바보처럼 플레이어를 따라오다가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를 있는 대로 다 맞고는 나머지 두 명의 캐릭터가 모두 드러누웠을 때였다. 이렇듯 나머지 두 명의 인공지능이 현저하게
떨어지다 보니 게임 진행 내내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플레이어의 발목을 붙잡는 일이 많다.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게임 진행 도중 플레이어
캐릭터를 변경할 수 있는 키 하나 정도는 넣어주는 센스가 필요했다. 영화에선 셋이 함께였기에 그렇게 든든하고 행복했건만, 게임에선 개발진의
센스 없는 설정으로 인하여 셋이 함께라서 짜증나고 한숨만 나오니 어이쿠~ 이를 어찌할꼬~

답답할 정도로 불편한 시점
|

너희들은 가만히 서서 뭐하니?!
---|---
이외에도 적들을 상대할 때 어떤 상황에서 어떤 공격 마법이 사용되는 것인지가 다소 불분명하다는 점이나 능력치를 향상시켜주는 카드 중에서 일부는 능력이 향상됐는지 안 됐는지 체감적으로 확인하기가 힘들다는 점 등등 따지고 들면 한도 끝도 없을 정도로 게임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요소가 상당히 많다. 결국 전체적인 큰 틀에선 상당히 잘 만들었다는 느낌을 전해주지만 이렇듯 세세하게 따져보면 불의 잔 역시 영화를 재미있게 본 관객을 위한 서비스 정도일 뿐, 영화 그 이상의 게임은 아닌 것이다. 언제쯤 되야 영화의 재미를 뛰어넘는 게임을 볼 수 있을지 아직도 갈 길이 멀고도 험하기만 한 것 같다.

일단 무조건 패고 보는 거다!!
|

카드로 능력치 향상이 되긴 하는 건가?!
---|---
영화를 보지 못 한 사람에 대한 배려
지금까지 영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게임들의 대부분은 그 태생적 한계 때문인지 이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은 영화를 이미 보았을 것이란 전제 하에
만들어진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게임의 내용이 극도로 부실해진 경우가 많았으며, 걔 중에는 영화의 스토리 중 박진감 넘치고 재미있는
부분만을 게임으로 옮겨와 전체적인 스토리는 하나도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허다했다. 영화 그 이상의 게임이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개발진
스스로가 영화의 틀에 얽매임으로써 없애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영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게임들의 대부분은 어쩔 수 없이 영화를 재미있게 본
관객들을 위한 서비스 정도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불의 잔은 다행스럽게도 영화를 보지 못 한 사람일지라도 게임을 즐기는 데에는 무리가 없도록 배려함으로써 그렇게 스스로 무덤을 파는
짓은 하지 않고 있다. 물론 불의 잔은 어찌 됐든 시리즈물이기 때문에 아예 해리포터에 대해 모르는 사람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겠지만,
전작 중에 한 두 개 정도는 보았거나 해리포터의 설정에 대해 대충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은 게임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전반적인 불의 잔의
스토리는 음미해볼 수 있을 정도로 불의 잔은 영화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대부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좀 더 깊이 있는 스토리 전달을
위해서 게임 중간중간에 그림동화 같은 느낌의 동영상을 삽입했다는 점이나 영화의 내용을 살리기 위해서 빗자루를 타고 드래곤에게서 도망치는
레이싱 게임과도 같은 느낌의 이벤트를 게임 내에 구현해 놓았다는 점이 그에 대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런 작은 차이가 영화를 재미있게 본 사람은 물론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까지 게임의 구매층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이 작은 차이가 지니고 있는 의미는 의외로 크다. 물론 세세한 부분에서 게임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문제점 때문에 이런
작은 차이가 큰 차이로까지 이어지지 못 하고 있다는 것이 다소 안타깝지만 어찌됐든 영화를 보지 못 한 사람에 대한 이러한 배려는 분명 높이
평가할만한 요소일 것이다.

그림동화 같은 느낌의 동영상
|

충실한 한글화로 확실하게 스토리를 전달해준다
---|---

헉!! 드래곤이다!!
|

하늘을 날아 도망치자!!
---|---
영화를 사랑한 그대에게 바친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불의 잔은 절대로 영화 그 이상의 게임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지금까지의 영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게임보다는 한층 수준이
높다. 세세한 부분에선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전체적인 면에선 상당히 잘 만들어져 있는데다가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게임을
즐기는 데에는 무리가 없을 정도로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도 비교적 잘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할 말이 많다 보니 제대로 언급을 하지
못했지만 그래픽과 사운드 또한 상당히 괜찮은 수준을 보여주기 때문에 보고 듣는 즐거움 측면에서도 최소한 실망감을 안겨주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사실 비판적인 사고를 접어두고 좋은 쪽으로만 바라본다면 불의 잔은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은 게임이다. 하지만 영화 그 이상의 게임이 아닌
이상에야 불의 잔 또한 영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게임이라는 그 필연적 한계로 인해 영화의 평가가 게임의 평가로까지 이어지는 선입견에선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쉽게 말해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도 놀라듯이, 영화를 재미없게 본 사람에게는 그 선입견으로 인해 게임 또한
재미없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필자는 영화를 사랑한 그대에게 이 게임을 바치고 싶다.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면 게임 또한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를 재미없게 봤다면 이 게임을 재미있게 즐기기가 상대적으로
힘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선택을 잠시 보류해두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에야 결코 선입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