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까지 게임하는 청소년들, 과연 게임사 잘못인가
5살에서 10살 사이의 자녀를 데리고 있는 부모님들과 얘기를 나누다 가끔 TV에 왜색이 짙은 만화들 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푸념을 듣는다. 그런 푸념에는 아이들이 외국 문화에 익숙해져 간다는 우려가 짙게 섞여있다.
'그래요?' 라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 TV 프로그램들을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국산 콘텐츠가 거의 없었다. 원피스, 케로로, 포켓몬, 짱구는 못말려 등등.. 화려한 외산 만화들이 안방을 독차지하고 있었던 것. 국산이라고는 둘리 같은, 나이로 따지면 중장년급 콘텐츠가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기가 찼다. "옆 나라에서는 다양한 콘텐츠로 이렇게 우리 아이들의 의식을 장악하고 있는데, 우리는 뭐했나?"
이유가 무엇일까, 검색을 해보면서 그 이유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공부 외엔 모든 것을 배제하는 교육 우선주의, 그리고 그와 맞물린 콘텐츠 경시 풍조'가 원인이었다.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모든 콘텐츠들은 국내에서 멸시의 대상이 됐다. 학부모 단체는 노상 만화를 죽이려고 발버둥 쳤고, 단 한 푼도 이런 콘텐츠들을 위해 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결과 한국 사회에서 만화는 살아남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한국 사회가 간과한 것이 있다. 놀이라는 것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것, 즉 수요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른들이 아무리 없애고 억압해도 놀이는 사라지지 않는다. 국내의 모든 콘텐츠를 없애버려도, 그 자리는 반드시 다른 것으로 채워진다.
이 말은 이미 증명되고 있다. 한국 만화를 멸종시킨 한국 사회는 이제 그 빈자리를 차지한 외산 만화에 자신의 아이들이 열광하는 것을 보고 눈물짓고 있다. 자체적인 경쟁력을 잃게 해놓고 수십억을 써서 들여온 해외 만화에 안방 문을 활짝 열어줬다. '디지털 임진왜란'에 스스로 정복당한 꼴이다.
이런 상황에 학부모들이나 사회의 시선이 뒤늦게나마 '한국 콘텐츠를 살리자'는 의식으로 변모했다면 이렇게 마음이 불편하진 않을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일지언정 희망은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런 콘텐츠 경시 풍조는 만화를 척살한 이후 게임으로 옮겨 붙고 있다. 학부모 단체는 게임을 척살하자는 움직임에 한창이고, 여성가족부는 게임의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의 반발 속에서도 최근 14세 미만 청소년들에게 밤에 강제로 게임을 접속하지 못하게 하자는 주장에 목숨을 걸었다.
문제는 이러한 여성가족부나 학부모 단체의 주장이 '책임 전가'라는 틀 안에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잘못되는 것이 무조건 만화나 게임 탓이라는 논리다. 만화나 게임 같은 콘텐츠가 없어지면 자신의 자녀들이 나쁜 길로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고한 어리석음이 아직도 그들의 머리 속에 가득 차 있다.
새벽 시간에 무조건 청소년들에게 게임을 못하게 하라는 셧다운제를 지지하는 한 시민단체. 문화부가 '부모의 승인'이라는 조건을 달자 "부모가 게임 접속 시간도 알지 못하고, 게임접속 내용도 모르는데 어떻게 게임사에 게임 차단을 요청 할 수 있겠는가?"라는 공개 글을 보내왔다.
웃음이 나왔다. 자신의 아이가 언제 게임을 접속하는지 어떻게 부모가 모를 수 있을까. 게임 내용 또한 검색하면 1분이면 알 수 있다. 자신들이 아이들에게 무관심하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고백하는 시민 단체의 오만함과 어리석음에 혀를 내둘렀다.
백 번 양보해서 게임을 무조건 밤에 차단한다 치자. 게임을 하고 싶어 하는 아이는 아무리 막아도 부모들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서라도, 해킹을 해서라도 게임을 한다. 결국 밤에 게임을 못하도록 하는 것은 부모의 몫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정말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이제 학부모들이 직접 게임이나 만화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콘텐츠가 유해한 것인지, 무해한 것인지 알아낼 정도로 부모들이 지식을 쌓아야 한다.
무조건 차단하고 막는다면 결국 그 빈 공간에는 외산 콘텐츠들이 들어선다. 한국 게임을 멸종시키면 더 자극적이고, 더 잔인하고, 더 중독적인 외산 게임들이 자녀의 컴퓨터를 점령하게 될 것이다. 그 피해를 고스란히 우리의 아이들이 입게 될 때, 과연 누가 그 책임을 지게 될지 궁금하다. 생각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