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게임백과사전] 게임 이동키는 왜 WASD 일까?

전 세계에서 PC로 게임 즐기는 게이머라면 자기도 모르게 WASD 키에 손 올려놓고 캐릭터 조작하고 있을 것이라 봅니다. 태초부터 원래 그랬던 것처럼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실 WASD가 표준으로 자리잡기까지 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표준처럼 자리잡은 WASD
표준처럼 자리잡은 WASD

초창기 PC 게임 이동 조작은 대부분 키보드 오른쪽 화살표를 썼습니다. '울펜슈타인 3D'나 '둠' 같은 초기 FPS는 화살표 키만으로 게임을 즐겼는데, 당시엔 상하 시점 전환이 따로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냥 화살표 방향키에 스페이스바 정도면 충분했습니다.

그러다 1996년, 완전한 3D 환경에서 시점 전환을 구현한 '퀘이크'가 등장한 이후 판도가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마우스로 시선 조작하고 키보드로 이동하는 이른바 '마우스 룩' 방식이 떠오른 거죠. 물론 이때도 WASD가 표준은 아니었어요. 플레이어들은 WASD도 쓰고, ESDF도 쓰고, 화살표도 쓰고 저마다 자기 방식대로 게임했습니다.

키보드만으로 즐길 수 있는 울펜슈타인 3D
키보드만으로 즐길 수 있는 울펜슈타인 3D

WASD가 표준처럼 자리잡은 배경에는 '쓰레쉬'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한 미국의 데니스 퐁이 있습니다. 세계 최초의 프로게이머로 유명한 사람이죠. 리그오브레전드의 '쓰레쉬' 캐릭터도 그의 닉네임이 모티브 입니다.

데니스 퐁은 십 대 시절 둠을 즐겼는데, 아버지가 IT 회사인 HP에 다닌 덕에 네트워크로 연결된 PC가 집에 여러 대 있었습니다. 덕분에 형제끼리 서로 붙으면서 네트워크로 게임을 즐길 수 있었죠.그런데 그 대결에서 데니스 퐁이 매번 졌습니다. 데니스 퐁은 키보드만 쓴 반면 형은 트랙볼과 키보드를 혼용해 플레이했고, 실력도 뛰어나 항상 데니스 퐁을 압도했죠.

형을 이기지 못해 답답함을 느낀 데니스 퐁은 결국 조작 방식을 키보드와 마우스로 바꾸고 WASD 조합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형을 완전히 압도하는 수준으로 성장했죠.

진정한 3D FPS 시대를 연 퀘이크
진정한 3D FPS 시대를 연 퀘이크

그리고 1997년에 열린 '레드 애니힐레이션' 퀘이크 토너먼트가 WASD 역사의 결정적 분기점입니다. 요즘 기준으로는 큰 상금이 걸린 대회가 아니었지만, 퀘이크 제작자 존 카맥이 대회 부상으로 자신의 페라리 328을 내걸면서 엄청난 관심을 받게 됐습니다.

이미 1995년 마이크로소프트가 후원한 둠 토너먼트 '저지먼트 데이'에서 우승하는 등 실력자로 성장한 데니스 퐁은 이 대회 결승에서 상대를 14대 -1이라는 압도적인 스코어로 꺾고 우승했습니다. 페라리는 그의 몫이 됐죠.

대회 내내 데니스 퐁은 당연히 WASD로 캐릭터를 조작했고, 화제의 대회에서 우승한 그의 플레이 방식이 알려지면서 설정 파일이 퀘이크 커뮤니티에 급속도로 퍼져나갔습니다.

이후 존 카맥은 아예 퀘이크 2에 그의 별명을 딴 'Thresh.cfg' 파일을 포함시켰습니다. 덕분에 플레이어들은 콘솔에 간단한 명령만 입력하면 데니스 퐁의 WASD 설정을 그대로 쓸 수 있었고, 많은 FPS 게이머들이 WASD 방식을 훨씬 쉽게 접하게 됐습니다.

WASD를 기본으로 설정한 하프라이프
WASD를 기본으로 설정한 하프라이프

WASD가 표준처럼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씨앗을 뿌린 게 데니스 퐁이라면, 그걸 거대한 숲으로 키운 건 밸브였습니다.

퀘이크와 둠의 고수들로 구성된 밸브 개발진이 1998년 '하프라이프'를 만들면서 기본 이동 키를 WASD로 채택했습니다. FPS는 물론 게임 역사 전체에 획을 그은 작품이 WASD를 기본으로 밀면서, WASD는 거의 표준처럼 굳어버리기 시작했습니다.

'하프라이프' 이후 등장한 '퀘이크 3' 같은 작품들도 이 흐름에 동참했고, 2004년 나온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까지 WASD를 기본 이동 키로 쓰면서 FPS뿐 아니라 RPG, MOBA, 전략 게임 할 것 없이 장르를 가리지 않고 WASD가 퍼지게 됐습니다. 캐릭터의 이동이나 카메라 조작에는 WASD가 사용되죠.

WASD가 표준처럼 자리잡은 데는 기능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화살표 키 주변엔 딱히 쓸 키가 없는 반면, WASD 주변에는 숫자 키(무기 교체), Shift(달리기), Ctrl(앉기), Space(점프), R(재장전) 같은 주요 키들이 모여 있습니다. 한 손은 마우스에, 다른 손은 WASD에 둔 채로 모든 명령을 소화할 수 있는 구조죠.

물론 WASD가 완전히 평정을 이룬 건 아닙니다. 여전히 WASD가 아니라 ESDF나 ASXC 등의 조작 방식을 고집하는 이용자들이 있죠. 특히 밸브 CEO 게이브 뉴웰은 ESDF를 고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쩌면 WASD가 아니라 ESDF가 표준처럼 자리잡은 세계가 하나쯤은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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