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게임백과사전] ‘메타크리틱’ 전에는 이 ‘점수’가 있었다?
요즘 게임의 평가를 확인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지표는 단연 메타크리틱입니다. 스팀 평가를 참고하는 경우도 많지만, 스팀은 PC 이용자 중심의 평가가 쌓이는 공간이고, 콘솔 게임까지 포함해 전문 매체 평가를 한눈에 살펴보려면 여전히 메타크리틱 점수가 중요한 기준으로 활용됩니다.

실제로 메타크리틱 점수는 단순한 참고 자료를 넘어 시장 반응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최근 붉은사막 역시 출시 직전 공개된 메타크리틱 점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펄어비스 주가가 크게 흔들렸고, 이후 게임을 깊게 즐긴 이용자들의 긍정적인 평가가 누적되고 나서야 분위기가 반전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만큼 메타크리틱은 게임의 완성도와 흥행 가능성을 가늠하는 상징적인 숫자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게임 이용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또 다른 점수 체계가 존재했습니다. 인터넷이 지금처럼 보편화되기 전에는 ‘패미통 점수’가 사실상 오늘날의 메타크리틱 위상을 가지고 있었죠.

패미통은 1986년 창간된 일본의 대표 게임 전문 잡지입니다. 원래 잡지 ‘로그인’의 한 코너였던 ‘패미컴 통신’에서 출발했고, 이후 독립 잡지로 성장했습니다. 당시에는 게임 영상이나 실시간 방송, 커뮤니티 후기 등을 손쉽게 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용자들은 신작 정보를 얻기 위해 잡지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패미통은 빠른 발행 주기와 풍부한 정보량을 앞세워 일본 게임 업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확보했습니다.
특히 패미통의 상징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크로스 리뷰’입니다. 네 명의 리뷰어가 각각 10점 만점으로 평가한 뒤 이를 합산해 총 40점 만점으로 점수를 매기는 방식입니다. 높은 점수를 받은 게임은 광고와 매장 홍보 문구에 적극 활용됐고, 이용자들의 구매 결정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지금의 메타크리틱 점수처럼 게임의 흥행 가능성과 작품성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 역할을 했던 셈입니다.

또한 초기 패미통 점수의 권위는 상당했습니다. 만점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고, 창간 이후 12년이 지난 1998년에야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가 최초로 40점 만점을 기록했을 정도죠.
그래서 당시 패미통 만점은 단순한 고득점이 아니라 ‘시대를 대표하는 명작’이라는 의미에 가까웠습니다. 이용자들 역시 패미통 만점을 일종의 품질 보증서처럼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패미통 점수의 무게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대 후반 들어 만점 작품이 이전보다 자주 등장했고, “예전만큼 엄격한 평가가 맞느냐”는 의문도 함께 커졌습니다. 특히 2008년 이후에는 대난투 스매시브라더스 엑스, 메탈 기어 솔리드 4, 428 봉쇄된 시부야에서, 드래곤 퀘스트 9, 몬스터 헌터 트라이 등 여러 작품이 짧은 기간 안에 연달아 만점을 받으면서 점차 평가의 희소성과 상징성이 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게임 잡지라는 매체가 가진 구조적 한계도 존재했습니다. 당시 게임 전문지는 게임사의 광고와 독점 정보, 선행 체험 기사 등에 상당 부분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판적인 리뷰를 게재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업계 관계와 완전히 분리된 평가를 유지하기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때문에 패미통 점수를 둘러싸고 공정성 논란에 대한 목소리도 점점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13년 패미통의 공신력에 결정타를 날린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죠죠의 기묘한 모험 올스타 배틀’의 만점 사건입니다.
이 작품은 패미통에서 40점 만점을 받았지만 출시 이후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긴 로딩 시간과 과금 요소, 격투 게임으로서의 완성도 부족 등을 지적하는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원작 재현도와 팬 서비스 측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을 만했지만, 과연 역대급 명작들에게만 주어졌던 만점에 어울리는 작품이냐는 의문이 거셌습니다. 심지어 원작 팬들 사이에서도 “좋아하는 게임은 맞지만 만점까지는 아니다”라는 반응이 나왔죠.
이후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만점을 받지 못한 게임을 두고 “죠죠 ASB보다 못한 게임”이라는 의미의 ‘죠보딸’이라는 표현이 밈처럼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시간이 흐른 2017년 당시 패미통 편집장은 인터뷰를 통해 “리뷰어들이 마츠야마 히로시(게임의 개발사인 사이버커넥트2 CEO)의 원작에 대한 애정을 높게 평가해서 만점을 줬다”라고 시인하기까지 했죠.
물론 이것이 패미통 리뷰 전체의 공정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용자들이 기대하던 객관적인 작품 평가와는 거리가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이 사건 이후 패미통 점수의 권위와 공신력은 이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같은 시기 메타크리틱은 인터넷 시대에 맞는 새로운 평가 기준으로 빠르게 성장하면서 패미통은 결국 세대 교체의 흐름을 막지 못했습니다. 메타크리틱은 여러 전문 매체의 리뷰 점수를 수집해 100점 만점 기준으로 환산한 평균 점수를 제공하는 서비스인데요. 하나의 잡지에서 네 명의 리뷰어가 평가하는 방식이 아니라 수십 개 매체의 평가를 한곳에 모아 보여준다는 점에서 글로벌 시장과 인터넷 환경에 훨씬 적합했습니다.
실제로 2007년 월스트리트저널은 메타크리틱 점수가 게임 판매량과 게임사 주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또한 2010년에는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의 '폴아웃: 뉴 베가스'가 메타크리틱 점수 85점 이상을 달성하면 개발진에게 보너스를 지급하는 계약 조건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게임은 84점을 기록해 보너스를 받지 못했지만, 메타크리틱 점수가 개발사의 성과급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강력한 지표임을 보여준 사례로 남았죠.
게임 평가를 살펴보는 이용자 입장에서도 메타크리틱은 편리했습니다. 수십 개의 리뷰를 일일이 찾아보지 않아도 전체적인 평가 흐름을 확인할 수 있었고, 평론가 점수와 이용자 점수를 별도로 제공해 전문가 평가와 실제 이용자 반응을 비교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수십 개 매체의 평가를 동시에 집계하기 때문에 특정 매체의 성향이나 편향이 전체 점수에 미치는 영향도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여기에 2000년대 이후 게임 시장이 일본 중심에서 북미와 유럽을 포함한 글로벌 시장으로 확대된 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제는 일본의 유명 게임 잡지 한 곳의 평가보다 전 세계 매체들이 어떤 평가를 내렸는지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인터넷 보급이 확대되면서 이용자들은 더 이상 잡지가 전달하는 정보만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고, 수많은 리뷰와 영상, 커뮤니티 반응을 직접 비교할 수 있게 됐습니다.
물론 패미통이든 메타크리틱이든 결국 점수는 게임을 설명하는 수많은 요소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 작품도 있고, 평가는 평범했지만 오랫동안 사랑받은 게임도 적지 않습니다.
모든 점수는 참고할 만한 지표일 뿐 절대적인 정답은 아니고, 게임의 평가는 직접 플레이한 이용자의 경험 위에서 완성된다는 점을 기억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