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오덕’으로 하시죠!” 의외로 한국 영향 받은 해외 게임들
요 몇 년 사이 해외 게임에서도 한국 문화를 전면에 내세운 사례가 조금씩 늘고 있다. 한류의 확산과 함께 K팝, 한국 설화처럼 이전에는 해외 게임에서 보기 어려웠던 소재들이 게임의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례로 인도네시아 개발사 위사게니 스튜디오가 공개한 ‘케이팝 아이돌 스토리즈: 로드 투 데뷔’는 K팝 아이돌 육성을 소재로 삼았고, 프랑스 스튜디오 노 모어 500이 개발한 ‘수호신’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비주얼 노벨로 주목을 받았다. 이제는 해외 개발사들도 한국 문화를 게임의 설정과 이야기를 이끄는 핵심 소재로 활용하기 시작한 셈이다.
하지만 더 흥미로운 사례도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국적인 배경이나 캐릭터를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데, 알고 보면 한국과 뜻밖의 인연을 맺고 있는 게임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동안 큰 화제를 모은 협동 등산 게임 ‘피크’다. ‘피크’는 ‘어나더 크랩스 트레저’를 만든 애그로 크랩과 ‘콘텐츠 워닝’으로 알려진 랜드폴 측 개발진이 함께 만든 작품이다. 이용자들이 산을 오르다 굴러떨어지고, 서로를 붙잡다 함께 추락하는 슬랩스틱한 장면으로 SNS에서 바이럴되며 큰 화제를 모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 게임의 개발 과정에 서울 홍대가 있었다는 것이다. 애그로 크랩 대표 닉 케이먼은 과거 해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피크’가 서울 홍대의 에어비앤비에서 진행된 한 달간의 게임잼을 통해 완성됐다고 밝힌 바 있다. 개발진은 컴퓨터를 들고 서울에 모였고, 도착하자마자 이케아에서 책상과 의자를 사서 조립한 뒤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갔다고 한다.

한국에서 모인 이유도 단순한 우연은 아니었다. 과거 랜드폴은 한국에서 한 달간의 게임잼을 진행하며 ‘콘텐츠 워닝’을 만들었고, 이 게임이 큰 성공을 거둔 바 있다. 긴 개발 기간과 번아웃을 겪었던 애그로 크랩 입장에서는 짧은 기간 안에 강한 재미를 뽑아내는 방식이 인상적으로 다가온 셈이다. 결국 두 스튜디오는 다시 서울에서 만나 한 달 동안 거의 모든 시간을 ‘피크’ 개발에 쏟았다.
이렇게 서울에서의 집중 개발 과정을 거치며 ‘피크’는 ‘섬에 고립된 정찰대’라는 콘셉트와 협동 등산, 우스꽝스러운 사고가 결합된 지금의 형태로 다듬어졌다. 게임의 기본 아이디어 자체는 1년 전 스웨덴에서 나왔다고 알려져 있지만, 한국에서 머문 한 달이 게임의 색깔을 구체화한 셈이다.

플랫포머 생존 게임 ‘레인 월드’도 의외로 한국과 연관된 작품이다. 이 게임은 귀여운 생명체처럼 보이는 ‘슬러그캣’을 조작해 거대한 생태계 속에서 살아남는 게임이다. 단순한 액션 게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용자가 세계의 중심에 선 영웅이 아니라 낯선 환경에 던져진 작은 생명체라는 감각을 강하게 전달하는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이 감각에는 개발자 조아 야콥손의 서울 생활 경험이 영향을 줬다고 한다. 그는 과거 서울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낸 적이 있다. 낯선 언어와 거대한 건물들, 복잡한 대도시 안에서 느꼈던 이방인의 감각을 ‘레인 월드’의 정서로 연결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거대한 세계 속에 홀로 던져진 느낌이 게임 속 생존의 분위기로 이어진 것이다. 여담으로, 공식 홍보 포스터 중 하나에는 한국의 남산서울타워가 연상되는 구조물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한국 이용자들의 영향으로 이름까지 바뀐 독특한 사례도 있다. 바로 독일 개발자 2인조가 만든 모바일 게임 ‘오덕’이다. 이 게임은 오리를 소재로 한 작품이었던 만큼, 초기 제목도 ‘덕링스(Ducklings)’였다. 하지만 개발자들이 한국 여행 중 이태원의 한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에게 게임을 보여준 것이 전환점이 됐다.
당시 개발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오리 게임을 소개하며 의견을 물었다. 이에 한국인은 제목이 평범하다며, 한국 이용자들이 좋아할 만한 이름으로 ‘오덕’을 제안했다고 한다. 영어로는 “오, 덕!(Oh, duck!)”처럼 들리고, 한국어로는 ‘오덕후’를 떠올리게 하는 묘한 말장난이었다. 개발자들은 이 조언을 그대로 받아들여 게임 이름을 ‘오덕’으로 바꿨고, 이 사연이 한국 커뮤니티에 퍼지며 게임은 큰 관심을 받았다.

이후 ‘오덕’은 한때 국내 무료 게임 순위 상위권에 오를 정도로 화제가 됐다. 이용자 대부분이 한국인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한국 반응이 컸고, 개발자들이 감사의 의미로 ‘오덕’ 플래카드를 들고 인증을 남긴 일도 있었다.
아쉽게도 현재는 게임이 삭제됐지만, 우연히 만난 한국인의 한마디가 해외 게임의 이름과 흥행에 영향을 줬다는 부분은 지금 봐도 꽤 독특한 사례다.
이처럼 한국은 직접적인 방식 외에도 간접적으로 해외 게임에 영향을 주고 있다. 앞으로도 해외 개발자들이 한국과 관련된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이 자연스럽게 게임 속 재미와 정서로 이어지는 사례가 더 많이 나오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