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용 게임 시장에 핵 겨울이 오는가?
비디오 플레이어가 처음 나오던 시절, 비디오 테이프는 지금의 VHS방식과 소니가 주도하는 베타방식 두 가지로 나뉘어 있었고, 플레이어도 제 각각의 규격을 가지고 발매되었었다. VHS방식은 화질이 조금 떨어지고 테이프 크기가 크지만 가격이 쌌고, 베타방식은 테이프가 작고 화질이 뛰어났지만 가격이 비싼 게 단점이었다.
그러나 결국 시장은 VHS가 압승을 거두고 베타테이프는 방송촬영용 등의 제한적인 용도로밖에 쓰이지 않게 되었는데, 그 원인은 잘 알려진 대로 소니가 성인물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인용 콘텐츠가 가진 파괴력을 잘 알려주는 사례 중 하나인데, 이것 때문에 소니가 자사의 휴대용 게임기이자 멀티미디어 기기인 PSP를 내면서 성인용 콘텐츠를 허용했으니 소니가 베타 방식의 패배 때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성인용 콘텐츠가 큰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비단 영상물뿐만이 아니다. 현재 모바일에서도 가장 '돈이 되는' 부분은 맞고, 성인용게임, 야설이나 사진, 동영상 등의 각종 성인용 컨텐츠이며, 그에 매달려 있는 CP(콘텐츠 제공업체)만 해도 상당한 숫자이다. 그 중에서도 업계 최대의 가입자수를 자랑하는 SKT 산하에 성인용 콘텐츠를 제공하는 CP가 가장 많으리라는 것은 자연스레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러나 최근 SK텔레콤(대표 김신배)은 7월 21일에 자사의 무선인터넷 서비스인 '네이트'에서 제공되고 있는 게임 메뉴 중에 성인 인증이 필요한 '고스톱&성인' 메뉴의 성인 게임 서비스를 전격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네이트 가운데 5번 '화보/그림' 메뉴의 섹시화보 서비스 등은 성인 인증을 필요로 하는 성인 콘텐츠가 아니어서 서비스 중단 계획이 없다고 덧붙였다.
SK텔레콤 측은 "정부와 시민단체 등에서 무선인터넷 서비스가 성인물로 넘쳐 난다는 지적에 따라 지난 6월에는 일명 '야설' 서비스를, 이달 13일에는 성인 콘텐츠 서비스 전체를 중단하기로 결정했으며 다른 메뉴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성인 콘텐츠에 대한 지적이 제기돼 이를 전격 중단키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즉, 섹시화보를 제외한 모든 성인관련 서비스를 중단하는 것은 물론, 성인 인증이 필요한 게임까지 모두 서비스를 중단하겠다는 선언인 셈인데, 이것은 성인관련 콘텐츠를 제공하는 CP는 물론이거니와 게임을 제공하는 게임 제작사, 퍼블리셔에게도 엄청난 타격을 줄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에 맞고 류는 제외된다니 일단은 안심이다, 올해 초부터 8월까지 출시된 맞고 게임만 약 25종이 넘을 정도로 모바일 게임에서 맞고 류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데다, 근래에 오키오키의 동거와 같은 성인용 게임까지 속속 발매되면서 성인용 게임시장은 낮은 수익에 신음하는 게임제작사나 퍼블리셔들의 효자상품 노릇을 톡톡히 해왔다.
컴투스나 게임빌 같은 초대형 제작사마저도 컴투스 맞고나 스피드 맞고 같은 맞고 히트 상품을 두세 가지씩은 반드시 가지고 있고, 이런 게임들은 각 사의 순이익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과연 이것을 모두 일거에 서비스 중단을 시켜버린다면 제작사와 퍼블리셔에 미치는 피해가 어느 정도일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아직 중단의 범위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속단은 이를지도 모르나, 야설 등의 서비스 전체를 완전히 중단시킨 전례를 보면 언젠가는 성인인증이 필요한 콘텐츠 자체를 네이트에서 완전히 삭제해 버리겠다는 의도로 보이므로, 맞고 류의 '성인인증이 필요한' 게임들을 SK 텔레콤이 언제까지 내버려둔다는 보장은 없다.
SK 텔레콤이 CP들의 반발과 수익감소를 무시하고 서비스 자체를 폐지해버린 전례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성인물자체가 네이트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보는 게 자연스럽고, 지금도 성인용 콘텐츠는 계속 사라지고 있다.
지금까지 성인 콘텐츠에 한해서는 언론에 대해 완전히 모르쇠로 일관했던 이통사들, 그 중에서 가장 악명이 높은 SK 텔레콤이, 단순히 5~6월경에 한창 떠들썩했던 성인 콘텐츠에 대한 보도 때문에 이런 극단적인 결정을 내렸으리라 보기는 힘들다. 이것은 지엽적인 부분이 아니라, 좀더 근본적인 부분에서 원인을 찾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조치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필자는 그 원인이 '아이들과 부모' 그리고 '기업이미지 재고'에 있다고 본다.
1990년대, '차세대 게임기' 세가 새턴과 플레이스테이션1이 한창 경쟁하던 시절, 처음에는 세가 새턴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었고, 새롭게 게임기 시장에 도전한 '신출내기'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1은 '팔리지 않는' 위치의 게임기였다.
그러나 세가에서 부분적으로 '18세 이상 추천' 등급의 준 성인물 게임을 허용하기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세가새턴은 상당히 높은 강도의 성인물이 범람하게 되었고, 얼마못가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1에게 왕좌를 내어주고 결국 PS2가 출시 되기 한참 전에 단종되는 수모를 겪었다.
글의 서두에서 성인물 때문에 소니가 패배했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 역의 상황에서 소니가 승리했다는 이야기는 뭔가 모순처럼 받아들여 질 텐데, 이것은 비디오 플레이어가 성인 층을 대상으로 한 기기였고, 가정용 게임기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상품이었다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요즘 아이들이 제아무리 용돈을 많이 받는다고 하더라도, 아직 일본에서도 플레이스테이션2는 신품이 30만원 가까이 되고, 최신게임기인 엑스박스 360도 40만원을 넘는다. 즉 게임기는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아이들에게 있어선 '부모가 사주는 물건' 인 셈이다.
그런데 부모입장에서 과연 성인물이 범람하는 게임기를 아이들에게 사주고 싶을까? 정상적인 부모라면 당연히 보다 아이들에게 안전한 콘텐츠가 제공되는 게임기에 손이 가는 게 당연한 일이었고, 결국 소니는 세가를 앞지르고 마켓쉐어(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SK 텔레콤은 점유율 1위이기는 하지만 그 대부분은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고 KTF나 LGT에 비교하면 청소년 그리고 유소년 시장에서는 절대적인 열세에 놓여 있다. 청소년 층은 결국 부모가 사주는 형태가 대부분인데, 통화 요금이 비싼데다 가입비나 단말기도 고급형이 많은 SKT 단말기는, 부모가 아이들에게 사주는 형태로서는 아무래도 기피대상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어차피 성인 층은 '단말기 통화가 주, 콘텐츠는 부차적' 이므로 성인용 콘텐츠는 사실 있어도 없어도 그리 큰 차이는 없다. 비록 그 수익이 아깝기는 해도, 성인인증이 필요한 콘텐츠 자체를 없애버림으로써, 항상 음란물이나 성인물에 아이들이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부모들이 안심하고 아이들에게 사줄수있는 단말기로 광고하고, 전용 요금제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홍보 한다면, 성인인증을 통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는 타 이통사에 대해 우위를 점할 수 있고, 유-청소년 시장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단초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업이미지도 재평가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즉, SKT는 새로운 단말기 판매시장으로 성인 층을 넘어 청소년, 유소년까지 그 범위를 확대하려 하고 있으며, 그를 위해 성인인증 콘텐츠를 일괄 포기해, 기업이미지를 재고하고, 자연스럽게 청소년 대상의 프로모션을 전개하기 손쉬운 위치를 선점한 것이다. 만일 이 시도가 성공해, 타 이통사가 SKT에 가입자를 빼앗기게 되면, 타 이통사도 성인물에 손대는 것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과연 이것이 국내 모바일 콘텐츠 시장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인지, 아니면 모바일 콘텐츠 시장의 한 축이 무너져 대혼란이 일어날지는 연말까지의 추이를 지켜보지 않으면 안되겠으나, 주사위가 어디로 굴러가건, 영세한 CP들과 관련 제작사들에게 추운 겨울이 도래할 것이라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게임동아 객원필자: 김효식(kdash21@nate.com)